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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약속
캔버스 앞에 앉았다.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캔버스 앞에서 무엇으로 그릴까 하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린다. 화려한 색감으로, 저 밑바닥 아래 감춰있는 속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즐기는 난, 가끔은 유화로 또 아크릴화로 많은 색들을 꺼집어낸다. 기름으로 묽게하여 두껍고 깊은 질감이지만 잘마르지 않아 오랜 시간의 덧칠이 필요한 유화와, 물로 섞어서 간편하게 금방 마르면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많은색을 원하는대로 빨리 편하게 쓸수있는 아크릴화이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무엇이든 그자리에서 바로 알아야하고, 또 빨리 보고싶어 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서두른다. 느긋하게 그 과정 안에서 가지는 즐거움과 깊은 맛을 잊어버린 것이다.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이 최인호 작가와의 생전의 약속으로 온 손가락 마디마디의 고통을 감수하며 여전히 펜으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소설의 긴 집필 과정을 컴퓨터로 쓰면 편하고 쉬울 것인데도 굳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했고 많은 연륜을 쌓은 작가이면, 누가 그 고집을 일부러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지켜야할 것은 힘들어도 품고, 또 포기할 것은 버리고서 가야한다는 신념때문에 여전히 펜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지켜가는 사람이 많으니 세상은 또 아름다운 것일 거다. 모든 일들이, 쉽게 온 것은 쉽게 간다는 거 잘 안다. 오래전 어렵게 그림을 다시 시작하며 했던 처음 나와의 약속 그대로 "지킬 것은 지켜가며, 그림도 그리고 또 세상도 살아야지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뒷켠에 묵혀 두었던 유화물감을 한가득 꺼내어 오래된 커다란 파렛트위에 아주 듬직하니 마음껏 짜놓았다.
2017-08-02 새 둥지를 보며
아침 일찍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오랜만에 눈부신 동쪽 햇살 보며 두 눈 찡그린 체 뒷마당으로 나선다. 늦은 밤에 잠드는 버릇 때문에 밝아오는 여명을 보지 못하지만, 가끔 시끄러운 새들의 지저귐 덕분에 억지 새벽잠에서 깬다. 부스스한 체 엉망으로 엉킨 머리가 창에 가득하다. 진한 커피 한잔을 들고 문을 열다 언뜻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선 웃음이 터진다. 나의 무심한 큰 웃음소리에 놀란 새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급히 날아오르고, 그 소리에 놀란 나는 뜨거운 커피를 쏟을 뻔했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당 뒤편 지붕 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기에 사다리를 걸고서 올라가 보니, 새가 알을 품고 있었다. 한동안 불을 켜지도 않았었고 또 높은 곳에 있는 탓에 그리 편하게 알을 품고 있었던 거 같다. 어릴 적부터 새들이 무서웠던 나는, 언제 새가 날아가고 난 후에 등을 갈아야지 하면서 몇 년이 지났고, 새들은 둥지 주인을 바꾸어 가며 여전히 알을 품고 새끼 새들을 키워가고, 난 아직도 그 등의 전구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무슨 종류의 새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태어난 여기가 고향이라 여기는지 조금씩 숫자를 늘려가면서, 어느 날은 수없이 많은 새가 작은 지붕 위에도 담장 꼭대기에도 내가 가끔 노을을 보는 의자 위에도 앉아, 나를 바라다보고 있다. 난 새들이 나의 자리를 침범하였다 생각하며 투덜거렸는데, 갑자기 어쩌면 나도 잠깐 이 세상의 한 자리를 빌려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라 오만 부리지만, 사실은 뒷마당의 많은 새처럼 그냥 스스로가 그렇게 여기며 사는 것이지 진정 나의 것이 아닌 것이다. 산다는 것도, 바람 불면 잠시 숨어있다 다시 날씨 좋은 날 더없이 지금을 만끽하며 뒷마당에 살고있는 새들처럼, 작은 하나의 생명체 그것뿐일 거다.
2017-08-02 별이 빛나는 밤에
꽤 오랫동안 발병을 앓았다. 우리의 민요 중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고 노래하던데 어찌 된 일로 임도 없는 나에게 발병이 생겨났는지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의학 용어로는 'Heel spur'라고 하는데 멀쩡하던 발뒤꿈치에 갑자기 불필요한 뼈가 만들어져 발바닥의 인대와 신경을 누르는 현상으로 가해지는 통증은 그야말로 몸서리치게 아팠다. 평소 틈만 나면 발발거리며 잘 돌아다니던 내가 풀이 죽어 방 안에만 박혀 있는 것을 안쓰러워하던 경희 언니가 느닷없이 명령조의 전화를 했다. "오늘 정각 12시에 너희 집 앞에 도착할 테니 수영복 한 벌하고 노트북만 챙겨 들고 나와" 영문도 모른 채 절룩거리며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낯 설은 벤이 내 앞에 섰다. 뜻밖에도 자동차 안에는 경희 언니와 함께 초면인 세 명의 여인들이 함께 탑승하고 있었고 큰 아이스박스와 더불어 침낭. 먹거리 가방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먼 거리 여행임을 직감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향해 언니가 말한다. " 발바닥에 두 번씩이나 주사를 맞았는데도 낫지 않았다니 무척 걱정된다. 다른 치료법으로 한 번 고쳐보자. 내가 알아봤는데 그곳이 참 좋다더라. 네가 안 간다고 할까 봐서 여기 네 또래 친구들까지 알선해서 모셔왔다." 매사에 마음 씀씀이가 깊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챙겨주니 눈물이 핑 돌았다. " 반갑습니다. 난 미세스 박이고요. 저는 김 수자예요. 재키 엄마입니다" 서로의 인사가 끝난 후 멀미를 배려해 거듭 미안해하는 나를 운전석 옆에 앉혀주었다. 서먹서먹한 것도 잠시 우린 금방 친해져서 가는 동안 내내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드디어 남쪽으로 5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지점은 깨끗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작은 Lake. I유황 온천장이었다. 놀라웠다. 땅에서 올라오는 유황의 냄새를 즐기며 많은 양들이 들판을 유유히 거닐고 있는 풍경은 특이하고 경이로웠다. 첫날 저녁은 야외에서 불을 지펴 고기를 굽고 된장찌개와 상추, 풋고추로 시골밥상을 차렸다. 둘이 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만큼 정말 짱 맛있었다. 예로부터 정이 많은 우리 민족은 역시 이곳에서도 들어나 타지에서 온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 늦도록 담소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는 듯했다. 더구나 미국땅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온천장에 우리나라 사람끼리 한데 어울려 회포를 풀 수 있으니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즐거운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얼떨결에 달려 나오는 바람에 나는 비키니 수영복의 상의만 달랑 싸가지고 왔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상심하는 나를 위로하느라 우리 여인네들은 이참에 모두 이브가 되자고 의견을 모았다. 드디어 다른 방문객들이 깊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살금살금 온천물로 뛰어들었다. 가로등도 없는 곳에 작은 전등마저 모두 꺼버리니 사방은 정말 깜깜했다. 그러자 오직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별빛만이 더욱 찬란해져 저절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아름다운 빛들이 부끄러운 몸을 감싸고 있는 물속까지 침범해 들어왔지만 우린 거침없이 온천의 매끄러움을 맨살에 느끼며 마음껏 황홀해 했다. 세월에 상관없이 여전히 탱탱하고 아름다운 선녀들의 모습에 반한 양들은 잠이 깨어 "음 메 에에" 침을 꼴 까닥 삼키었고 살랑 이던 바람마저 부러운듯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어느 곳에선가 날개옷을 감춘 나무꾼이 숨어 있을 만한데 새벽이 맞도록 잠꾸러기 나무꾼은 고맙게도 나타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마지막 날 밤 온천을 즐기러 온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장작불을 피워 캠프파이어를 열었다. 서로간에 이름도 성도 직업도 모른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다만 하늘에선 수많은 별빛이 땅에선 타오르는 모닥불이 서로 만나 둥그렇게 둘러앉은 이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짧은 만남, 깊은 추억을 못내 아쉬워하는 우리들은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 서로 사랑해'라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여행지에서 썼던 글을 출품했는데 올해의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중국 변방의 어느 노인이 말했다는 고사성어 '새옹지마'가 떠오른다. 인간 만사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될 수도 있기에 무슨 일이든 그저 묵묵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한다. 발병으로 얻은 나의 복처럼 사랑하는 독자들도 새옹지마의 복을 많이 받아 누렸으면 좋겠다.
2017-07-06 짝사랑의 실루엣
이사랑은 혼자서 하는, 마음으로 오롯이 쌓아가는 것이다. 그 사랑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다만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드리면 되는 것이리라. 중학생 때 화실의 꼬마 선생님을 아주 오래 아무도 몰래 혼자 좋아했었다. 그 선생님이 머리 깎고 군대 가는 어느 가을날엔, 학교를 조퇴하며 혼자 어느 먼 초등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서 있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어른이 된 걸 보여주고 자랑하고파 선생님을 찾아갔었던 적도 있었다. 어떻게 그리도 용감했었는지 새삼 나도 놀란다. 무얼 원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있는 것에 충실해지고 싶었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내게 주어진 사랑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 어쩌면 소유의 유혹도 마음속 유치함도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투명함으로 부끄럽지 않았었나 보다. 갑자기 왜 이 혼자 하든 마음속 사랑이 떠올랐을까? 먼 바람결에 전해온 이야기 속에, 그 선생님이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소식 때문이리라,,,
2017-06-04 낯선 곳으로의 꿈
아주 먼 곳의 작은 바닷가 마을. 조금은 넘치게 마신 와인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바람과 초록빛 바다 색깔에 취한 체로,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나라의 골목길에서 나풀거리며 어두운 밤의 불빛 속을 걷고 싶다. 언제 한번 풀어놓고 자유롭게 나 자신을 꺼내어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항상 두 손 움켜쥐고 혹시 잘못할까 걱정하며 살아왔는데 가끔은 훨훨 다 놓고서 편안해지고도 싶다. 언제나 오랫동안 가고 싶었고 꿈꾸던 곳. 조금은 낯설겠지만, 굳이 정들려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는 곳. 그래서 난 여전히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상상을 하며 꿈을 꾼다. 떠나와 있다는 바람끼의 유연함까지 있기에. 마음껏 예술이라는 더 없는 감사를 빌려 나는 다시 날아가고 싶은 꿈을 이어가고 있다. 먼 낯선 곳을 그리며.
2017-05-04 여행 뒷이야기
꼭 가고 싶다는 바램과 어쩌면 무조건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절박함까지 더하면서 향한,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어렵게 떠나는 만큼의 간절함도 물론 함께했다. 언제나 집안을 맴도는 생활을 넘어서서 어쩌면 무언가 다른 정신적인 영감을 얻고 싶었다. 무섭도록 푸르른 바닷가 언덕 위 가파른 곳에 세워진 성들을 보면서, 오래된 장엄한 성당의 천장 벽화와 십자가를 향해 무릎 꿇고 미사를 올리면서, 동굴 속에서의 긴 세월에 무너져 있는 조각들을 보면서, 울었었고 쓰다듬었었고 이제서야 왔다며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뾰족한 성 탑 꼭대기 계단 위에서는, 갇혀있던 동화 속 왕자님이 그리웠고 다시 가슴 두근거리며 펄떡이는 싱싱한 사랑의 물결도 그리웠다. 어쩌면 예전의 생에서 한번은 지나갔을 것 같은, 익숙하면서 전혀 낯선 기억들이 떠오르며, 무엇인지 모르면서 솟는 그리움과 마음 끝 바닥에 숨어있는 외로움들이, 생소한 언어 속에서 몇 번을 만났다.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난 또 늘 하던 대로 늦잠을 자며, 저녁 밥상 위의 반찬을 걱정하며, 또 운전 중에 끼어드는 이를 향해 소리를 지를 것이다. 산다는 것이 늘 이런 것이지만, 오랫동안 걸어 왔던 인생의 피곤함과 뿌듯함이, 삶이라는 이름으로 묻혀서 빛을 바라지만 나만은 안다. 여기까지라도 얼마나 애썼고 힘들었는지.
2017-04-05 짝사랑은 그리움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해마다 4월이 가까워지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괜히 나만 알기엔 아까운 듯, 일부러 달력에 나의 생일이라고 노란색 형광 칠을 해둔다. 일요일 늦은 오후 살풋 잠이 들었는데, 먼 곳에 있는 아들이 전화로 대뜸 어디에 있냐고부터 묻는다. 당연히 집이라고 했더니 바로 나와서 대문을 열어 보란다. 잠결에 문을 여니, 등 뒤로 환한 햇살을 받은 체, 한 아름 꽃을 안고 아주 이쁘고 밝은 미소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아들이 서 있었다. 한 달 동안 계획하여, 비행기를 타고 꽃을 주문하고 친구와 약속하며 준비했다고 한다. 갑자기 밀려오는 감사함과 어느 누가 이렇게 사랑받을까 싶은 커다란 기쁨에, 꽃다발을 안고서는 엉엉 울어 버렸다. 언제나 가슴 저린 엄마의 짝사랑과 그리움으로 내 안의 한구석에선 늘 외로웠는데,,, 난 그날 내 사랑이 단지 한쪽의 사랑만이 아님도 알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은 오고 있지만, 올해는 나 혼자서 여행 계획을 이미 해놓은 상태이다. 나는 그날 나를 낳아 잘 길러주신 부모님과 묵묵히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절대의 동반자가 되어준 남편, 그리고 무한의 사랑을 배우게 해주는 아들에게 감사의 촛불을 켤 것이다. 멀리서 홀로, 그러나 가까이서 함께…
2017-03-03 여행에의 손짓
특별히 부족함이 없는 삶을 나름대로 영위하고 있다. 더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목적마저 채워가고 있는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뭔지 모르는 허전함에 젖을 때가 있다. 그것은 여행에의 손짓임을. 마음에 맞는 동반자와 함께 먼 길을 떠나고 싶지 않으냐는 여행에의 손짓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저런 약속을 앞두고 늘 불안해하고 초조하기까지 한 나의 성격, 이 성격으로 인한 내 스스로의 손짓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림과 글, 그 재능의 한계에 도달할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으로 표현하고 싶은 열정과 열망도 손짓 안에 포함되어 있다. 아니다, 이 모든 중심에 바로 이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껍질을 깨지도 못한 체, 다만 얇은 나비의 날개를 달고서 넓은 세상을 날겠다는 말만 되풀이되는 스스로의 다짐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다짐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행에의 손짓에 따라가야 한다. 이럴 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잠시라도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것이다. 손짓을 따라 움직이고 나면 한 단계 올라선 삶의 울림을 안고 돌아오게 된다. 그것을 충전이라고 이름해도 좋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전이 되어지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2017-02-03 내가 원하는 것은,,,,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라고 말하였다.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과거의 난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사춘기의 심각한 반항도, 삶에 대한 고뇌도, 앞날을 위한 심각한 열정도 없이, 마냥 책상 앞에 앉아 입시를 위한 지독한 외우기에 전념했었던 거 같다. 점점 하나씩 세월을 먹으면서, 무엇인지도 모르는체 한 움큼씩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으며 편안해지고 싶어진다. 진정한 내가 아닐 지인데도, 세상을 살아가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할 때가 분명 있다. 과연 정말 내가 원하고 내 안에서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분명히 읽어보았던 책인데도, 전혀 새로운 것으로 내 앞에 놓여 있다. 거의 100년 전의 "데미안"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교육으로 세상을 배웠길래, 이리도 깊고 신중하고 삶에 대해 진심으로, 정면으로 부딪치며 고민하고 살았는지, 나 자신의 우둔함과 가벼움이 부끄럽다. 물론 각자가 살아가는 방법은 다 다르다. 하지만 내면의 진정한 소리를 지나쳐 버리지 말고 귀 기울여 들으라고 한다. 혼란 속에서 들리는 생각의 소리가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헤르만 헤세 자신도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위해서 살지 못했기에 분명 그렇게 썼을 것이다. 아는 만큼 느끼며 살아간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깊이는 얼마만큼이며 진정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무엇이며, 또 난 무엇으로 오늘 지금을 살고있는 것일까? 몇십 년 만에 다시 읽은 데미안에서 다시금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이 성장통에 새삼 감사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나를 본다.
2017-01-02 물결 따라
세상 모든 것은 알지 못하는 커다란 물결 따라 흘러간다. 바로 어제까지 멋진 겨울 외투 사러 가고, 맛있는 거 먹고, 신나게 산다는 것을 만끽하며 또 새해에 시작할 큰 욕심 품으면서 의기양양 잠자리에 들었었다. 그러나 일어난 다음 날 차가운 아침은, 나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로, 온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무서움과 공포가 밀려오고 한순간 깨달았다. 너무 자만했었다는 것을.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말과 소의 이야기가 있다. "우생마사(牛生馬死)" 헤엄을 잘 친다는 말은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물살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다 지쳐 결국 물에 빠져 죽지만, 전혀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소는 거센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레 그 흐름에 맡겨 마지막에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해를 맞으면 모두가 또 다른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다. 뭔가를 해보자면서 다시 자신을 무장하고 통제하며, 늘 하는 편안함과 느긋함을 깨면서 마치 어제와 오늘은 별로 좋지 않았다는 듯이,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해 서두른다. 몸의 중심인 허리가 단 한 순간에 움직일 수가 없게 되며, 모든 일상의 간단한 일들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배웠다. 오늘은 오늘뿐이며 무작정 앞만 생각하고 살지 말며, 쉬어가며 하라는 오늘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몇 주를 침대에서만 푹 쉬며 아무런 생각 없이 있다. 열심히 걸어 왔으니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쉬었다가 가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매운 라면도 끓여 먹고 설거지도 내버려 둔 체, 너무도 달달한 사랑 이야기인 연속극 봐가면서, 게으름으로 있으련다. 커다란 파도가 치면, 세상일들 물결 따라 흐르며 살으란다.
2016-12-01 사랑 그리고 예술
진정한 예술 작품은, 긴 시간의 힘든 인내와 삶의 고뇌가 더불어 외로운 창작의 고통에서 나오는 거라 한다. 그리고 그런 작업 속에서 깨어있는 예술가는 늘 춥고 배고프며 외롭다고들 한다. 결혼 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친구분들에게 늘 그러셨다. "우리 딸은 사랑에 빠져서 예술을 못해요." 하시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남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셨나 보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씀하시는 춥고 외로운 예술가를 경애하고 두려워하며 또한 더 멀리 있으려 했었다. 이제 어느덧, 두려워하며 서성이고 있던 그 예술의 문 앞에서 간신히 고리를 잡고, 문턱을 넘어서려 애쓰고 있다. 가끔은 잠 못 이루는 밤도 있어, 눈 밑의 거뭇한 주름 길게 달고서 온 머리를 다 흔들고, 무엇 하나라도 써보려 하얗게 새벽을 보기도 한다. 감히 어찌 예술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을까마는, 내게 있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은 작은 기도이며 구원이다. 무엇을 원하고 또 해달라는 소원의 간절함이 아니라 감사의 감사로서 올리고 싶은 무조건적인 겸손함이다. 꼭 그런 힘든 고통 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조금은 덜 춥고 덜 배가 고프며 덜 외로운 지금의, 넘치는 감사 안에서 만들어가는 나름의 작업들을 난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남은 딱 하나의 간절한 소망은 - 한참을 모자라는 인내이더라도, 높은 삶의 고뇌 속에 있지 않더라도, 간절한 사랑을 넘치게 받아 외롭지 않더라도 ? 꺼지지 않는 창작의 열정 안에서 진정한 예술작품을 단 하나라도 남기는 것이다.
2016-11-03 모딜리아니 전시회를 보고서
기다리고 꼭 해야만 했던 숙제 같았던 만남이었다. 가을 끝자락의 이른 아침, 텅 빈 전시장 안은 쓸쓸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거처럼 뿌연 안갯속에 유독 그림들만 살아서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란 목을 비스듬히 기울인 체 온몸을 다 드러낸 여인의 그림은, 어릴 적 현관 앞 신발장 위에 아주 오래오래 세워져 있었다. 누구의 그림이었는지 알기도 전, 하루에 몇 번씩 신발을 벗고 신으면서 마주쳤던 그 그림은 내 망막과 심장 위에 문신처럼 새겨져 버렸었다. 철들어 그림 공부를 시작하며 모으기 시작한 화집 속에서 모딜리아니라는 이름을 알았지만, 나의 그림 속엔 언제나 아무도 몰래 숨어 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간 만나지듯, 긴 시간을 보낸 후에 비로소 마주한 그의 진짜 작품 앞에서, 난 한동안 숨을 멈추며 서 있었다. 이렇게 이 순간 이런 설레는 뜨거움이, 바로 새로운 그림 공부의 되새김질이라는 의미를 알게 될 줄이야. 그는 너무도 가난하여 캔버스의 뒷면까지도 아껴가며 그려야 했었고, 빵을 사기 위해 조각을 포기하고 잘 팔리는 초상화들만 그려야 했었다. 그러나 그가 표현했던 모든 인물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기다란 얼굴의 불균형한 모순 속에 있지만, 오히려 더 가슴 속 깊은 곳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먹먹한 아름다움이었으며, 그림 속 여인의 텅 빈 동공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공감의 아픔이었었다. 만남의 끝은 다시 헤어지는 것이지만, 항상 내가 그려가는 그림의 색깔 위에서, 나비의 날개 위에서 언제나 살아서 흔적을 남겨 놓을 것이다. 그의 불행했던 36년의 짧은 생이였지만 무한한 예술의 생에서는 영원히 살아 행복해 할 것이다.
2016-10-05 여름은 떠났고
올여름의 낮은 유난스레 뜨거웠고 또 해가 진 후의 밤은 묘한 차가움에 오돌오돌 추웠었다. 그 변덕 부리던 계절이, 천천히 보이지 않게 떠나며 시간의 다리를 건넜다. 어젯밤, 누군가가 하늘의 보름달을 꼭 대문을 열고서 보라고 했다. 새삼 문밖으로 나와 본 달은 환하게 더 가까이에 떠 있었으며, 그 달빛 탓인지 대나무들은 그림자와 더하여 훌쩍 더 길어진 모습으로, 얕은 바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모르는 척해도 나무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고, 어느새 잠결에 따라 나와 유난히 비벼대며 사랑을 원하는 고양이도 벌써 다 자라 버렸고, 나도 그사이 조금씩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주제가 아닐 진데도, 어리석게 그냥 모른 척 해버리면 변하지 않은 체 있어 줄줄 알았었나 보다. 변하지 않고 고여 있는 건 썩는 것이라는데 그래도 달라져 떠난다는 건 아프다. 거울 속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모습도, 곁에 마냥 있을 것 같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이별도,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의 무서움도, 되돌리지 못하는 많은 해야 하는 일들도. 그런 무심함에 억지로 갇혀있는 나에게, 어릴 때 고향으로 성묘 가던 이야기와 보름달을 보라든 작은 글귀 하나가 후두둑 내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적셔왔다. 어쩌면 이제는 그 무심함의 게으름도 충분하고 미적거리는 겸손도 그만하고서, 마음 창고 건너편 속에 자물쇠 걸어뒀든 또 다른 욕심과 용기를 꺼내야만 할 거 같다. 그렇지, 또 다른 여름은 다시 올 것이며, 늘어져 있는 허리춤 추겨 올리면서, 산다는 것의 남아있는 몫의 판, 신명 나게 즐기며 해보련다.
2016-09-02 술 한잔
술이 주는 작은 여유에 온종일 꽉 쥐고 있던 하루가 노곤해지면서 힘이 풀린다. 아주 옛날 - 저녁 해 질 무렵,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모두가 하고 있던 일들을 멈추던 때가 있었다. 그 시간이면 뒷마당 돌 불상들이 나란히 서 있는 연못 앞에서 엄마가 맥주를 드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윗층의 병원에서 일하시다 마당에서 놀고 있던 나를 부르시고서는 "엄마, 맥주 하나 가져다 드려라"고 하며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난다. 새삼 맥주를 권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던, 또 해 질 녘의 모과나무 아래 그늘 밑에서 위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던 두 분의 보이지 않턴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그땐 왜 그리도 몰랐었는지,,, 하루가 끝나가는 고단한 시간에 아버지는 엄마가 그리웠었고, 또 그 작은 맥주 한잔이 오늘도 수고하였다는 고마움의 표시였던 것 같다. 이 사랑을 이제서야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어느덧 나도 그 시절의 어른 나이가 되어 세월을 많이 묻혀간다. 가끔 해가 산을 넘어가며 모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서두르는 시간이 되면, 그때의 어린 내가, 차가운 맥주 한잔을 들고서 엄마 흉내를 내곤 한다. 이제는 흘러나오는 애국가도 없고 그 연못도 불상도 모과나무도 없으며 물론 엄마, 아버지도 계시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가면 그 자국만큼 잃어버리는 많은 허전함 때문에, 우린 추억이라 부르면서 또 채워가고 있는가 보다. 모두가 각각 길 위에서 인생이라 하며 걸어가고 있지만, 이런 따뜻한 꺼지지 않는 기억들이 고마움으로 또 축복으로 내게 내려온다. 가끔은 지쳐서 손끝조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 또 온통 짜증에 넘쳐 아무에게라도 함부로 하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이면, 그 무례함과 오만함과 또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에 용서를 빌면서, 두손으로 힘주어 움켜진 체 살고있는 오늘이라는 이름 앞에서 잠시나마 흐트러지고 싶다. 커다란 반항보다 술 한잔의 비틀림으로 - 조금은 미안해하면서 - 풋내나던 예전의 실수들도 다시 기억하면서, 후회보다는 차라리 작은 여유를 찾으련다.
2016-08-01 친구
친구라는 말만 들어도 왠지 힘이 나고 편안하다. 무엇이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우리는 이런 단어로서 불려지고 또 애뜻해 하며 유독 힘든 날엔 더 생각이 나는 것일까? 어릴 적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집의 우리 셋은, 같은 학교와 동네 그리고 똑같은 나이로, 항상 함께 언제나 있었다. 늘 잘 넘어져서 온통 무릎에 상처투성이의 나는, 가운데 친구의 병원 집에서 빨간 약으로 치료받고, 맨 끝의 친구 - 식당 집에서 맛있는 장조림 밥상을 받곤 했었다.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어떻게 놀았는지의 기억들은 가물거리지만, 한없이 편안했고 욕심내며 싸운 적이 없었다는 생각은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헤어졌고, 세월의 시간 안에서 각자의 인생길을 따라 숨 가쁘게 살아오다, 문득 어느 날 우리 셋은 만났었다. 어릴 적 고향 바닷가의 커다란 소나무 앞에서 그냥 얼굴만 바라보며 아무 말없이 서 있다, 떠나야 하는 차 시간이 된 가운데 집 친구는 그렇게 가버렸고, 남겨진 우리 둘은 또 그렇게 헤어졌다. 너무도 다른 서로의 삶으로, 가운데 집의 친구는 아기도 없이 오로지 남을 위해 희생하며 종교적으로 살고 있고, 끝의 집 친구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혼자 모든 것을 정리해가며 열심히 살고 있으며, 나 또한 이 먼 곳에서 떠나왔던 곳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살고 있다. 과연 운명은 있는 것일까? 스스로가 짊어지고서 가야 하는 등 뒤의 십자가는 정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시간에 휩쓸려 살아지는 것일까? 가끔 우리 셋은 뜬금없는 글들을 보내면서 각각 스스로를 위로하며 또 만나고 싶어 한다. 아무런 할 말도 없고 또 함께 공유해야 하는 공통점도 없으면서, 언제나 마음속의 친구라는 단어의 처음에는 그들이 제일 먼저 순순히 앞자리를 잡는다. 점점 예전의 기억들이 더없이 떠오르는 만큼, 그런 아무것에도 원하던 거 없던 순수함이 그립다. 뭐라도 주고 싶은 아니 내 마음속의 기도라도 그들을 위해 더 올리고 싶은 간절함이다. 한밤의 조용한 시간에 돌아앉아 우두커니 벽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그린다. 큰 세상의 반짝이는 화려한 별보다 작고 좁은 나의 하늘 위의 수수한 별처럼, 외로운 날이면 존재의 따뜻함만으로도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그들을 위한, 무릎 꿇은 욕심 없는 기도를 올린다. 오늘도 친구라는 편안한 이름의 누군가에게.
2016-07-03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며칠을 같은 그림을 들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앉아만 있다가는, 일어나 부엌으로 가 물 한 잔을 들고서 창밖을 바라본다. 생활이라는 공간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의 커다란 작업을 한꺼번에 매일같이 나란히 바라보면서 기막힌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갑자기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언제나 항상 오지를 않는다. 그렇지만 마음과 손은 하자고 그래도 해보자면서 나를 이끈다. 수천수만 가지의 온갖 색색의 나비들이 세상을 날아다니면서 강하면서도 어지럽게 유혹한다. 이렇게도 화려한데 나를 모른 척할 거냐고도 하고, 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도 하면서, 저녁 밥상의 반찬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 날갯짓한다. 이 귀한 나비들을 어떻게 붙들어서 어떤 마음으로 곁에다 두고 간직하고 있는 것들인데 싶어, 더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그림 앞으로 앉는다. 순간의 붓 자국만으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간결하게 양쪽의 줄을 서로 팽팽하게 더 잘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예술이라는 가장자리를 아직도 헤매고 있는 천재가 아닌 난 수없이 절망한다. 어쩌면 다 모른 척하며 그냥 나비들만 붙들고서 그리면 엄청난 작품이 나올 것이며, 난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을까 하며 상상도 해본다. 그렇지만 해질 무렵의 부엌에서의 난, 언제나처럼 콩나물을 씻고 생선에 소금을 뿌리고 간을 맞추며, 이 테두리 안 동그라미 안에서의 일상을 꾸려간다. 무엇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왜 하는 것일까,,,, “아무런 것에도 매달리고 싶지 않아, 그냥 좋아서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 하면서 구속 아닌 더 질긴 구속을 감사해 하면서, 아직도 끝내지 못한 나비의 그림 앞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반쯤 비어있는 캔버스 앞에서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느긋한 게으름으로 즐기고 있다.
2016-06-02 글에서 삶을 배우다
글을 읽으면 그 안에서 인생을 배우게 되며, 그 배운 걸 알고 깨달으면서, 그로 인해 얻고 느끼는 그만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받고서는 그 제목이 주는 감동에 조금 흥분했었다. 늘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살아가는 이 삶은, 시작도 끝도 모두 단 한번의 연습도 없으며 또한 정답도 없이 가고 있다. 그렇지만 글에서 배우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깨달으며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인생을 우리는 훈련도 없이 또한 연습도 없이 하려니, 힘들고 실수도 하며 가끔은 엉망진창으로 되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 책 속의 첫 이야기에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된다. '사람이 어떻게 죽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곧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문제와 같다.' 어려운 기다란 어떤 설명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던져줄 수 있다니, 새삼 책을 들고 구석진 자리를 찾던 어릴 적부터의 버릇에 감사할 뿐이다. 책도 사람도 물건도 -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인연이 있다. 좋은 소중한 만남을 인연으로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정성과 진실이 필요하듯이, 좋은 책 속의 글들을 찾아 마음으로 읽으며 느끼다 어느 한순간, 내 삶에 꼭 필요한 구절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어느 한 줄의 문장이 내 인생을 바꾸게 되며 또 세상을 바꾸게 되는 그런 기막힌 인연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여전히 책을 든채 아직도 서성이고 있고 또 그런 운명적인 글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그나마 지금의 이 자리만큼이라도 서 있을 수 있는 건, 글에서 삶을 배우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2016-05-02 나답게 산다는 것
나처럼 - 나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것인지, 또 다른 생일이 곧 오게 되었지만 그나마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스럽다. 매일매일 어느 한 가지라도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는 일이 없다. 문득 새벽잠에서 깨어 더 잠들까 아니면 일어나 뒷마당에라도 나갈까 하는 것부터, 뭘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누굴 만나러 나갈까,,, 모든 것이다 스스로가 결정하고 또 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인 것이다. 이런 자잘한 일들이 모여지고 쌓여서 어느덧 습관으로 만들어지고, 그런 습관들이 모여져서 나답다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세상의 소문과 이야기들에 신경 쓰지 않으려, 그냥 모르는 척 듣지도 않은 척하며 살려 한다. 터무니없이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으며 그냥 하고픈 거 하면서, 내가 결정하고 만드는 새로운 길을 열심히 배우며 살기를 원한다. 그것을 만들어가고 이루어가는 건 오직 나 자신일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머리 쓰다듬어주며 겸손해하라고 일러준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다 문득 글이 쓰고 싶다는 욕망에 많은 노력을 이 일에 온통 쏟은 채 있지만, 혼자 몰래 행복해한다. 새로운 힘든 길이지만 문득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꿈꾸며 바라던 거였다던 걸 알고서는, 어쩌면 난 지금 내가 원하던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믿으며, 내가 만들어가는 나처럼 산다는 구속을 기꺼이 받으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던 사람이 되도록 애쓰면서 이 환하고 눈부신 봄날에 그렇게 나답게 살고 싶다.
2016-04-04 사랑합니다
3월의 첫 봄비 오는 날, 엄마의 몸은 땅에 묻고, 마음은 내 왼쪽 가슴 한 켠에 묻고서는 , 긴 비행시간을 지나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유난히 아들을 좋아하던 엄마의 불평등에 어릴 적부터 늘 심술이었고, 꼭 언젠가는 왜 그랬느냐고 물어볼거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늘 칭찬받고 싶은 목마름에 더 열심히 더 애쓰며 살아왔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한 수 위인 엄마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오롯이 나와 함께 내 손잡고 떠나시면서 정확히 알으켜 주셨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 거는 바로 너란다 내 딸아" 언제쯤이면 나는, 엄마처럼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헛껍데기 허물을 벗고서 화려하고 멋진 나비의 새롭고 자유로운 날갯짓으로, 훨훨 더 높이 더 멀리 더 힘껏 날아보련다. 사랑합니다.
2016-03-04 병원 복도에서의 단상
병상의 엄마가 통증에 시달리시다가 간신히 잠드신 것을 보고 병실을 나왔다. 끝이 없을 것 같이 길고도 긴 복도는 한밤중의 정막에 깔려 있었다. 슬픔에 눌린 체 버티어 오든 나의 아픔도, 이 고요 속에서 길고 긴 호흡과 함께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비릿한 회색빛 한 병실 앞에서, 간호사에게 자판기 커피를 건네주는 환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팔에는 긴 창만한 주사기를 꽃은 체, 한겨울인데도 발가락이 훤히 드러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구겨진 환자복에 연세도 꽤나 들어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퍼진 미소는 그 많은 주름을 다 덮고 있었다. 아름다운 젊은 간호사에게 커피를 건네는 모습은 그렇게 꽃과 같이 복도에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그 커피에 사랑의 묘약이라도 담긴 듯 목마른 내 가슴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파하는 엄마를 껴안으며, 주름진 목 뒤에서 고백하는 핏줄의 절절한 사랑이, 커피에 담겨 내 가슴으로 흘러들어 오는 듯했다. 복도 위에서 펼쳐진 커피 한잔의 단상은, 이렇게, 아무리 고통받고 슬퍼도 - 시간과 무관하게 지나는 이 밤, 눅눅한 병동에서 잠시 한숨 돌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