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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12-04 오인사격(誤認射擊)
몇 년 전 오클랜드 시내에서 한 경찰관이 범인 검거작전 중에 사망했다. 불법 마약거래 현장을 덥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동료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젊고 유능한 경관이 순직을 했다. 사복을 입고 검거작전을 펴다보니 다른 경찰관이 범인으로 잘못 알고 오인사격을 하고 만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전쟁터에서는 비일비재하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 폭격기들이 아군의 군사시설을 공격하기도 했고, 장비가 전자화 된 현대전에서도 폭탄 투하지점을 잘못 알고 병원이나 민간시설이 파괴되기도 한다. 오인사격이란 말은 군사용어로만 쓰이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사용된다. 같은나라 국민들간 이념대립으로 보수와 진보간 거의 피튀기는 마찰을 빚고 있다. 형제간 동료간에도 지지하는 정당이 다를 경우 서로 등을 지고 상대를 공격한다. 인터넷상에서는 매일 '꼴통보수' '빨갱이' 등 상대를 비하하는 댓글들이 수 천건씩 올라온다. 특히 세월호 사건이나 국정교과서 문제가 불거질 때는 현 대통령을 향해 심한 욕설이 난무했고 시위현장에서는 보수와 진보간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독립군들이나 그들을 위해 중가주 농장에서 막노동으로 힘들게 벌은 돈을 군자금으로 보냈던 선조들, 6.25 한국전당시 어린나이에 학도병으로 자원하여 북한군의 총알받이로 쓰러져갔던 우리의 할아버지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요즘 북가주에서는 언론사 기자들간 협회설립을 두고 다소 마찰을 빚어 관심있는 사람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기자협회를 28년간이나 지속시키며 서로의 우의를 지켜온 협회원들끼리 견해차이로 인해 사분오열되는 모습이, 10년 넘게 협회운영에 참여한 본 기자로서도 창피할 따름이다. 한때 활발한 취재활동으로 이름이 났던 H일보 정 모 기자가 협회모임에서 '동포언론사 기자들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너무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로 협회구호를 '박봉불구열심'으로 하자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언론사 환경도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지만 기자들의 기본자세인 '팩트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전달'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이며, 갈치가 갈치꼬리를 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천만관객을 넘긴 화제작 '베테랑'에서 주연배우 황정민이 부패한 동료형사한테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11-04 총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총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박성보 편집국장 미국내에서 잊을만 하면 한번씩 터지는 대형 총격사건. 요즘은 그 빈도가 높아져 한달에도 여러 건의 총기사고가 발생하여 온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도 학교, 극장, 길거리 등 점점 더 대담해지고 방법 또한 잔인하게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1년에 총기사고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3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중 2만 명 정도는 자살이고 나머지 만 여명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인의 총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한인 이민자들은 물론 어린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매번 대형 총기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총기규제를 입법화 하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오바마 대통령도 법안통과를 위해 상하원의원들을 압박하지만, 거대한 총기제조업체들의 로비에 번번히 벽에 부딪히고 있다. 총기휴대 옹호론자들의 논리는, 이렇게 세상이 위험하니 본인의 안전을 위해 국민 모두가 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알듯이 총이라는 것이 방어적인 수단 보다는 공격적인 목적이 앞서게 되어있고, 가정집에 보관하다 보면 언젠가는 엉뚱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못해 배우자를 총으로 살해하는 사건들이 그 예이다. 또한 총기가 정신적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별 규제없이 판매되고 있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대형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들은 거의 다가 정신이상이나 심한 충동장애자들이었다. 교내에서 30여명을 총기로 살해한 버지니아공대의 조승희, 6.7살먹은 어린아이들에게 무차별 총기를 난사한 샌디훅초등학교 총기사건, 우리지역에서 발생했던 오이코스간호대학 총격사건의 고수남, 지난 10월 기독교인들을 골라 머리에 총을 쐈다는 오레곤주 움프콰칼리지총격사건 등등.. 가해 범인들은 거의 총격 범행 후 자살하거나 경찰의 대응사격으로 사망했지만 그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거나 평소에도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주변사람들은 전하고있다. 정신상태가 불안하여 재판부적합 판정을 받아 아직 재판도 받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수용되어 있는 오이코스대 총격사건의 범인 고수남(미국명 One L Goh)을 교도소에서 면회할 기회가 있었다. 희생된 7명의 동료학생과 유족들에게 죄송할 뿐이라며 고개를 떨구다가도, 자신을 왕따시킨 학생들과 방조한 학교측에 분노를 표하며 갑자기 흥분하기도 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총격사건 직후 가진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정신질환자가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우리뿐이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몇 달에 한번꼴로 이런 종류의 총기난사 사건을 겪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선진국이다" 미국에서 테러로 죽은 희생자보다 총기난사와 총기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 3~4배나 많다고신문들은 전한다. 총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것이 본 기자만은 아닐 듯 하다.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5-11-01 리더의 자질
제임스 시네걸 , 이제 곧 80 세가 된다. 낯설은 인물이지만, 알고보면 우리의 일상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가 바로 프라이스 클럽이다. 1976 년에 시작해서 1983 년에 오늘의 이름 코스트코로 바꾸었다. 그의 리더쉽 덕택에 코스트코는 지난 30 여 년 동안에 ,수차례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가 있었다. 그는 2012 년에 CEO 직을 그만두고 내려왔지만 회사는 계속해서 성장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한 지속적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코스트코는 2014 년에 연 매상 1,120억을 기록해서 20 억 달러의 순익을 올렸다. 총자산 330억 달러에 직원수는 186,000 명으로 미국 동종 비즈니스 랭킹 제 2 위. 미국을 대표하는 리테일 기업으로 간주할 수 있다. 회사 규모에 비해 그가 받는 CEO 연봉은 고작 35만 달러! 전체 기업 총수중에서 바닥의 10 퍼센트 수준이다. 월마트 CEO만 해도 1900만 달러를 받았고 다른 대기업 CEO 들도 평균 급여로 천 백만 달러씩 받았다 (AFK-CIO 조사 보도 자료 2013). 코스트코는 초대형 리테일 마켙으로 알려져있지만 ,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타 회사와 경쟁이 안될 정도로 직원들 이직률이 제일 낮다는 것이다. 직원들 페이 수준도 경쟁사와 비교할 때 약 40 퍼센트나 더 높은 반면에 직원 부담 건강보험 혜택 비용 또한 낮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CEO를 포함한 전 직원이 퍼스트 네임 베이스로 호칭함으로서 모두가 서로 균등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급여와 건강보험을 포함한 직원 대우와 , 상호 대등한 관계를 제공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자발적 충성도가 높아 그러한 자세가 한층 높은 고객 서비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직원들에 대한 오버헤드 비용은 타 회사에 비해 훨씬 높지만, 우수한 품질과 가격 그에 따른 고객 서비스로 실제 이익마진률은 경쟁업체를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장이 없다. 샌 디에고의 한 주니어 칼리지 출신으로, 재학시 친구 회사에서 침대 매트리스 나르는 것을 돕다가 우연히 그 회사 페드-마트에서 잡을 얻게 되었다. 입사 후 그의 능력을 지켜본 사주 솔 프라이스의 추천으로 전무까지 승진하게 되었고 , 1976 년 경 그의 도움을 받아 프라이스 클럽을 공동으로 창업하게 되었다. 이어서 1983 년에 제프리 브롯트먼과 같이 코스트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주 프라이스는 그에게 있어서 보스 일뿐만 아니라 정신적 멘토로 그에게서 리더로서의 수업을 많이 배웠다고 한다. 한 예로, 프라이스는 시네갈을 대동해서 리테일 매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담당 매니저에게 업무 부실로 (일부러) 심한 질책을 하자 그 메니저는 그 책임을 두 아래 직원에게 전가하면서 자신의 책임은 회피했다. 그 일이 있은지 2 주일 후 프라이스는 그 매니저를 해임시켰다. "리더가 책임을 회피하면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는 리더의 책임론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성공적인 기업 운영을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데 한 사람이 혼자서 그 결과를 독차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않다"고 하면서 기업운영의 결과를 - 결과가 좋았던 , 좋지 않았던 상관없이 - 다 나누어 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리더의 본성은 무엇일까? 뛰어난 리더쉽으로 효과적인 운영을 함으로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효과적인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가져야할 자질이 있다. 시네걸의 생각에 의하면 " 자신의 몫을 챙기기 보다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몫에 더 포커스를 둠으로써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비즈니스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몫으로 35만 달러만 택했기에 아래 직원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갈 수 있게된 것은 아닐까...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10-04 편집국에서... 편견과 고정관념
미국사람들은 친절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인종차별을 한다. 중국사람들은 지저분하며 예의가 없다. 필리핀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멕시코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흑인들은 모두 저학력자들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듣는 다른 민족들에 대해 비하하는 말 들이다. 심지어 같은 한국사람끼리도 XX도 출신 사람과는 사업을 같이하지 마라. 교회다니는 사람이라고 다 믿지 마라 등등 서로를 불신시키는 편견에 사로잡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과연 누구랑 만나야 되고 누구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확인되지 않은 얘기 몇 마디로 한 사람도 아닌 수 억명의 대상을 판단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또 이 편견이 위험한 것은 적대집단에 대한 차별대우로 발전하고 결국은 상대를 공격하거나 집단테러로까지 치닫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총기사고나 폭탄테러의 원인 중에는 막연히 상대집단에 대한 편협한 증오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해묵은 고정관념도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정직하게 장사하면 망한다. 정치인들은 다 거짓말쟁이다. 젊은사람들은 다 진보주의자다. 신문에 난 기사는 모두 사실이다. 동성애자들은 거의 정신질환자다. 여자들은 운전을 못한다... 이런 부정적인 고정관념들이 우리들의 시야를 더욱 좁고 편파적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사회생활에서 낙오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은 원래부터 이민자들의 땅이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이나 유학을 오는 사람들이 매년 수 십만명에 이른다. 이들과 어울려 함께 조화롭게 생활해 나가는 것이 이땅에 사는 이민자들의 운명임에도, 서로에 대한 편견을 갖고 스스로의 벽을 만들다 보면 자신만 고립되는 처지로 전락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의 실정법에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에 대해 매우 엄하게 다스린다는 사실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조금 더 유연한 자세로 상대를 배려하며 지구촌 가족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일등시민으로 인정받고, 남도 우리를 향해 편견을 버리고 보지 않겠는가.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9-04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상처는 다 갖고 있기 마련이다. 어린시절 키가 작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았던 기억이나 선생님에게 가혹한 체벌을 당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성장해서는 실직이나 동료의 배반, 배우자의 부정 등 여러가지 가슴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민자들의 경우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좌절했던 순간들, 현지 언어가 익숙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했던 기억들이 되새겨지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의 뇌는 망각(忘却)이라는 낡은 기억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기능이 있어 안좋았던 일들을 서서히 잊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다른세상으로 보내거나 전쟁을 겪으면서 참혹한 경험을 당한 경우는 거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뇌리에 깊이 박혀 망각 기능이 적용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어제까지 전화통화를 하던 예쁜 딸이 갑자기 배가 침몰하여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을 때 느껴야 했을 참담한 심정이나, 전투기의 폭격에 건물이 무너지고 피가 튀기는 다리를 이끌고 비명을 질러대는 전쟁터의 참상을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두려운 기억은 웬만해서는 잊혀지지 않는다. 그 충격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심리적 치료를 요하기도 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으며 언론매체들은 한국의 일제수난기와 6.25 한국전을 다시 조명하는 기사와 프로그램들을 제작하여 보도하고 있다. 일본땅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하다가 현지에서 죽어간 이름모를 조선의 청년들,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소에서 온 몸으로 수치를 당한 조선의 처녀들...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깊이 패인 주름살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었는가. 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증언한 신문기사가 가슴을 저민다. 90을 바라보는 강 할머니는 매일 손톱에 빨강색 매니큐어를 칠한다. 한창 멋 부릴 소녀시절 위안부로 끌려가 제대로 꾸며보지 못한 게 한(恨)이 맺혀서 그런다고 했다. 광복 70주년이었던 지난 8월 15일, 일본의 아베총리가 종전기념 연설중에 과거사를 사과할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역시나 실망만 안겨줬다. 평생을 눈물로 상처를 감싸오던 수많은 피해자들을 다시 좌절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마지막 자존심이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다시 우기기까지 한다. 망각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5-08-31 저 빌딩, 내 꺼였지...
론 신청이 들어왔다. 2 백만 달러에 상업용 빌딩을 사겠다는 계획이었다. 중국계 상권이 몰려있는 지역의 인컴 프러퍼티로 이 삼 층은 아파트, 일층은 현재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다. 몇 년 전 중국계 투자그룹이 소유한 후부터 렌트를 올리겠다는 압박을 계속 받아왔다. '일단 빌딩을 사면 렌트 걱정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고, 아랫층 식당에서 나오는 수입도 괜찮고, 로케이션도 상권이 활발한 지역에 있으니 장래성도 있을 것 같아' 김 선생은 값이 비싸긴 하지만 결국 빌딩을 사기로 마음을 굳힌것 같다. "그래도 2 백만 달러는 아닙니다. 렌트 수입에 비하면 지나칩니다. 식당을 하시니까 롱 텀 리스가 필요하시겠지만 그 가격은 무리입니다. 그 빌딩에서 제일 큰 수입은 김 선생님 식당에서 나오는 렌트인데, 리스를 연장안해주어서 나가게되면 자기들이 더 손해를 보겠지요. 윗층의 테난트들도 렌트 컨트롤 때문에 오래 살고있는데 렌트가 싸니까 계속 있는 것이지요. 김 선생님께서 리스 걱정하시는 줄 알고 그 참에 비싼 가격으로 팔려고하는 겁니다. 사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론도 어렵죠" 나는 말릴 수 밖에 없었다. 몇 달이 지나 김 선생 한테서 전화가 왔다. "빌딩을 샀다"고 했다. "아니 론은 어떻게 ?" "아 , 뉴욕에 있는 한국계 은행에서 일 차를 받았고요 이차는 무슨 캐피털 회사인데 나머지 다 받았어요 , 저는 다운페이 조금 했고요" 너무나 뜻밖이다. 그 론이 될리가 앖었을텐데..... 한 일 년 지났나 싶을 때 다시 전화가 왔다. 한창 경기가 어려울 때였다. 막상 만나보니 그 인상 좋던 얼굴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은행에서 독촉 편지가 왔는데요. 제 형편을 설명해 주시고 페이먼트를 줄여달라는 편지 한장 부탁드릴께요"... 한인 타운에 즐비한 상업용 빌딩과 스트립몰 쇼핑센터들, 그 옆을 지나면서 무심코 던지는 말; "아 저 빌딩, 내 꺼였지... " 웃으면서 던지는 그 말 속에 잠겨있는 말할수 없는 아픔들! "최소한의 다운 페이로 최대한의 대출"을 받아 빌딩을 구입한 경우가 많았다. 테난트 한 두명만 렌트 페이를 못하면.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본인 나름대로는 렌트가 안 나와도 현재의 비즈니스 수입으로 충분히 카버할수가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막상 빌딩을 소유하고 보니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확실한 에이전트에게 믿고 맡긴다해도 결국 문제는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은퇴에 대비하여 사두었지만 사고보니 그게 아니다라는 것, 그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선택은 없다.결국 밑지고라도 팔아야지...채 몇 년을 못 넘기고. 그렇게 땀흘린 돈으로 얻은 빌딩 잃어버린 사람 수가 적지않았다. 은행에 올 때 , '본인이 스스로 자기 론을 미리 승인한' 후에 오는 경우가 많다. 은행은 그저 론 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은행은 단순히 고객이 원하는대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다. 최소한의 조건만 맞으면 융자를 제공해서 "눈 앞의 단기적 이익'을 구하기 보다는, 고객의 입장에서 "마치 은행원 본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한다는 입장"에서 융자를 다룸으로서 고객들이 오래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선회하지 말고 "이런 이유 때문에 해드릴수 없다"는 고언도 할수있어야 한다. "고객이 오래 살아야 은행도 오래 살수있다"는 관점이다. 지난 이 삼 십년 돌아보면 " 저 빌딩 내 꺼였지"라고 말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실수는 순전히 그 들만의 잘못일까?...그렇지 않다. 나도 그 잘못을 피할수 없다.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8-04 댓가를 지불하라
얼마전 몬트레이 한인회관의 개관식에 다녀왔다. 자체 한인회관을 바라는 지역한인들의 오랜 숙원이 41년만에 이뤄지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실리콘밸리지역 집 한채 값도 안되는 건물 하나 구입하며 웬 호들갑이냐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2세들에게 한글교육을 제대도 시킬 공간 하나 없어 떠돌아 다녀본 경험이나, 한인들이 모여 행사할 변변한 장소가 없어 매번 식당에 모여 애국가 부르던 일을 생각한다면, 지역의 자체 한인회관을 가진다는 것은 상징적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 이번 몬트레이 한인회관의 건립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음을 알게됐다. 한국정부의 지원금이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수십년간 한인회관을 세워야 한다는 취지로 한푼 두푼 성금을 모아왔고, 결정적으로 현 한인회장을 비롯한 몇몇 인사들이 개인대출을 받아가며 수 만달러씩을 내놓으면서 성사가 되었다. 한인사회 여러 단체들의 행사에 찾아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일은 하는 사람만 하고 돈도 내는 사람만 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꼭 일도 협조 안하면서, 돈도 한 푼 안 내면서 불만만 표출하는 사람들이있다. 결정적일 때 나몰라라 빠지고 생색낼 때는 얼굴을 내미는 분들도 여럿 보았다. 2세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고 한국어를 가르쳐 소통을 이어가자고, 한국문화를 주류사회에 전파하여 한민족의 우월성과 존재감을 갖자고, 자체 한인문화센터를 건립해 노인복지와 한인들 단합에 힘쓰자고, 소위 한인단체장이란 완장 찬 분들은 침튀기며 연설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 한권 안 사주고, 성금도 당연히 안 내고, 간혹 몇 백달러 내고는 신문에 이름 내달라고 전화가 온다. 요즘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다보니 재미가 쏠쏠하다. 키워본 사람은 알듯이 병원 데리고 다니고 산책시키고 배설물을 치우는 등 꽤 일이 많다. 그렇더라도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그 댓가를 기꺼이 지불한다. 어떤 사람이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복권 맞아서 부자되게 해달라고.. 그러던 어느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제발 복권이라도 사놓고 맞게해달라고 말하거라"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7-04 소문이 무서운 이유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편집국장 # 2005년 8월 31일. 이라크 바그다드. 수 십만명의 모슬렘들이 시아파 성지인 '이맘 무사 알카딤 사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2킬로미터 떨어진 티그리스강 다리에서 순례자들 몇 명이 자살특공대가 있다고 소리쳤다. 소문은 태풍과 같은 속도로 퍼지며 집단적 공황이 발생했다. 수 천명이 다리를 건너 도망치는 과정에서 수 백명이 인파에 밟히고 짓이겨져 죽음에 이르렀고 일부는 다리에서 떨어지거나 30미터 깊이의 티그리스강에 뛰어내려 1천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이 사건이 있기 직전 순례객 7명이 박격포 공격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기에 대중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결국은 있지도 않은 자살특공대 소문으로 어처구니 없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고였다. # 2015년 6월 현재. 대한민국.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사태에 전 국민이 공포, 두려움, 낙담에 휩싸여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전염된 확진환자들이 일반인들과 접촉하며 5천명 이상이 격리 대상자로 관찰받았으며 전국의 초중고교 수천곳이 교문을 일시적으로 닫기도 했다. 대형병원들이 패쇄되고 외국관광객들의 방문이 뚝 끊기며 수 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발생초기 병원이름도 밝히지 않는 정부의 미덥지 않은 대응에, 온 국민들 사이에는 SNS등을 통해 괴담이 성행했고 각종 유언비어들로 인해 공포심만 더 갖게 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전염병에 관한 정확한 정보와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고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벌한다는 발표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나, 공포에 떠는 국민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포가 너무 클 때는, 어떤 주장을 해석하는 데 최악의 가능성이 가장 믿을만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또한 공포에 휩싸인 사람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소식을 믿고 유포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소문 유포는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공포심을 누그러뜨리려는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전쟁이나 자연재해, 전염병이 돌 때 등 사회 분위기가 흉흉할 때 소문은 더 무성한가 보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소문을 유포하는 자가 그 소문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6-04 설레임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편집국에서... 새 학년이 되면 가슴이 설레이면서 기다려지는 것이 있었다. 새 교실, 새 책, 새 선생님, 새 친구들... 지난 1년간 새로운 정보, 새로운 인물을 찾아 12권의 책을 만들어 내면서 늘 설레임이 앞섰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지난호들을 뒤적거리며 늘 초심으로 돌아가 이 설레임을 간직하고자 애를 쓴 1년 세월이었다. 한국이나 LA, 뉴욕에서 만드는 잡지가 아니라, 이 북가주지역에서 북가주 한인들을 위한잡지를 만들자는 창간이념과 이왕 만드는 거 최고수준으로 만들자는 고집이 SF저널을 탄생시켰고 이 고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역의 숨은 인재들을 찾아 인터뷰를 이어갔고, 다른 매체에서 볼수 없는 칼럼과 아름다운 글이 연재되었으며, 한인업주들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비즈니스정보를 공유하는데 주력했다. 최고수준의 해상도를 자랑하는 인쇄품질, 파격적이고 세련된 편집디자인은 이미 독보적인 고품격 매거진의 영역에 도달해 있음을 자부한다. 또한 온라인과 연결되어 세계 어느곳에서든지 실시간으로 기사와 광고까지 볼 수 있는 PDF시스템도 SF저널만의 자랑이 아닐수 없다. 론칭 1년을 넘기며 수많은 독자층을 확보하였고 기사를 제보해 주거나 광고를 연결해주는 후원그룹이 생긴 것도, 지난 1년간 제작진의 노고를 보상받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과 함께 위로를 받는다. 글로벌기업 삼성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SF저널도 오늘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더 사랑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로 성장하기 위해 겸허한 자세로 변화를 이어가리라 다짐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온 것 처럼 독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정확하고 올바른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며, 편중되지 않는 균형있는 논조를 유지해 나갈 때 명품잡지로 재탄생될 것을 믿는다. 짜증나는 뉴스가 없어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북가주를 넘어 세계의 유명 관광지를 원색 칼라사진으로 보면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게재하는 광고마다 매출이 늘어서 영향력을 인정받는, 그런 잡지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설레임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5-05-21 한인 역사상 최초로 LA 시의원에 당선된 데이비드 유
[이원창 컬럼] 데이비드 유 (39 세) 후보 , 마침내 승전고를 울렸습니다. 총 20800 명의 투표자 중에서 11200 표를 확보하여 상대후보 램지를 1600 표 차로 따돌리고 마침내 한인 최초로 LA 시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아시안계로 볼 때도 지난 1993 년 이후 최초로 시의원이 등장한 것입니다. 데이비드 유 후보의 53.85 퍼센트의 지지율 획득은 그가 한인들 뿐 아니라 라티노 ,아시안, 유태인 아이리쉬등, 타 인종에게서도 강한 지지를 받았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한인사회 자체에서는 마지막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의 승리에 대해 비관적이었지만, 막상 그가 모든 약세를 극복하고 승리하자, 이를 기적으로 받아들일 정도입니다. 선거 바로 그 전 날까지 분투한 그의 선거 팀은 로타리 클럽등 한인 단체를 방문해서선거참여 뿐만 아니라 램지 후보 측에 비해 훨씬 모자란 선거 자금 지원도 요청했습니다. 이의 요청에 따라 한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타민족 그룹 들이 적극적으로 그를 지원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총 15 명의 시의원 중에 단 한 명의 시의원에 ㅡ불과하지만 데이비드 유 후보는 에릭 가세티 시장, 허비 웨슨 흑인계 시의원회장 그리고 제 4 지역에서 14 년간이나 자리를 지켜온 탐 라본지 전의원의 기존세력의 막강한 화력을 뚫고 승리를 쟁취한 것입니다. 시의원의 임기는 만 4 년으로 연봉 18 만 달러애 수 명의 보좌관의 지원도 받게됩니다. LA 시 거주자는 약 4 백 만명으로 시의원 한 명당 25 만 명의 주민을 봉사 담당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한인들은 그 지역에 살고있는 주민들이었지만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지역구의 불규칙한 배분에 의해 한인 거주 지역은 현 시의회 의장으로 있는 허비 웨슨 흑인계 의원이 대변해 왔습니다. 최근 한인타운 중심지역 윌셔와 버몬 근처에 25 층 규모의 대형 아파트 건축을 놓고 시의장 웨슨과 에릭 가세티 시장이 강력히 밀어붙쳐 다수 지역주민들의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있습니다. 현재 극심한 교통체증과 제반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슴에도 불구하고 지역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동 건축공사 개발업자를 적극지원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즉 한인타운 한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정적 그 곳에 살고있는 한인들의 의견은 반영되고 있지않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이비드 유 후보의 시의원 당선은 그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우선 , 한인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초선의원으로서 아직 자신의 입지가 안정되있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시의성 활동을 통해서 전체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해 나갈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정치적 성장은 곧 한인을 포함한 제 4 지역 주민들의 의견 반영이 더욱 더확실하게 실현될 수 있는 길을 열게될 것입니다. 백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루어진 한인 1.5세 데이비드 유 후보의 LA 시의원 당선을 축하합니다. 한인이기 이전에 먼저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위해서 사심없이 일할 때 그의 장래는 밝아져 LA 시 정치권의 리드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도 가능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원창 LA의 열린문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5-05-09 힐러리 클린턴 ,최후의 도전
1947 년 시카고 출생이다. 웰슬리 대학 때부터 힐러리는 이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학교 설립 140 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인사를 제치고 재학생으로 졸업연사를 맡아, 그 녀의 과감한 주장에 찬사를 받았다. 곧, 알래스카로 직행 캔 공장에 취직 생선을 짜르다가 열악한 작업환경에 분노, 업주를 고발했고, 화가난 업주는 공장문을 닫아버렸다. 1970 년 예일 법대로 진학해서 먼저 와있던 클린턴을 만나게 된다. 그는 힐러리가 오클랜드의 로-펌에서 섬머 인턴쉽 하는 것을 알고 그 녀를 찾아가 설득해 같이 동거를 시작하게된다. 졸업과 동시에 청혼했지만 그 녀는 이를 거절하고 와싱턴으로 향한다 1974 년 하원 워터게이트 조사단 시절, 클린턴이 다시 청흔했지만 역시 대답은 노! 그러던 차, 그 녀가 DC에서 변호사 시험에 뜻밖에 낙방했을 때 클린턴으로 부터 위로의 급전을 받고 알칸사로 향한다. 무난히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그 녀는 클린턴의 세번 째 청혼을 받아 결국 그와 1975 년에 결혼하게 된다. "Get two for the price of one", 클린턴이 즐겨쓰는 말이다. 백악관 입성했을 때 , 최초로 영부인에게 집무실을 제공했다. 힐러리가 대통령의 파트너로 입각한 셈이다 한 명의 대통령을 뽑았지만 2 명(?)의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실, 즉 전통적 탑-다운 관계가 아니라 일 대 일의 파트너쉽이 이루어진 것이다. 힐러리는 의료개혁을 목표로 "전국민 유니버설 케어" 입법을 추진했지만 보수세력과 충돌, 그 노력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어서 터진 화이트워터 부동산 투기사건. 백악관 법률자문 빈스 포스터의 권총자살과 섹스 스캔들; 재임 끝무렵의 모니카 르윈스키 백악관 인턴과의 스캔들. "했다 안했다. 그 증거가 스커트에 묻어있었다" 빌 클린턴은 끝내 위증죄로 탄핵소추까지 갔지만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대통령 퇴임 후 뉴욕 주 채파쿠아로 거처를 옮기자 힐러리는 비어있던 뉴욕 지역 상원직에 도전해서 의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연임에서도 67 퍼센트의 지지로 당선, 대권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부쉬 정권에 지친 미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해결사로 자처하면서 민주당 경선만 이기면 대권은 따논 것이라고 쾌재를 불렀지만, 낙관은 금물이었다. 시카고 초선 상원의원 오바마 (당시 47세)가 대권을 노리는 줄은 몰랐었다. 만만하게 봤다가 결국 당했다. 대권의 승패가 결정된 지 수 일 후 오바마 한테서 전화가 왔다. "국무성을 맡아달라. 나는 경제가 엉망이라 나라 바깥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제의를 수락, 그 녀는 2009 년 국무장관으로 취임했다. 힐러리는 역대 장관중 가장 많은 국가 112 개 국을 방문, 도합 956,000 마일을 다녔다. 그 녀의 노력으로 미국은 1955 년이래, 버마와 첫 수교를 시작하게된다. 이어서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동남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Smart Power"- 군사적 파워와 문화 물질 지원을 통한 부드러운 강공책-을 도입해서 평화적 공존의 기본을 이루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은 임기 말에 발생한 리비아 밴가지 미대사의 죽음을 핑계삼아 그 녀의 외교적 노력을 깍아내리려 애썼고 그 녀를 가리켜 그저 "오바마의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고 비하하려 노력했었다. 그럼에도 불구 그 녀의 저서 "Hard Choices"에 밝혀진 것처럼 세게 각국의 원수 ,정치 지도자 들과의 직접적 대화와 협상을 통해 그 녀가 쌓은 경험은 그 녀의 세계무대 진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이 제 67 세! 무성한 가지의 깊은 고목이 되어 하늘을 찌른다. 과연 그 뿜어내는 입김은 온 산을 덮어 강을 건너 늪으로 , 산맥을 넘어 바다로 갈 수 있을까?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5-04 모이면 힘이 됩니다
처음 독도의 표기를 복원하자는 서명운동을 시작하려고 할때 그 누구도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참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독도에 대한 홍보에 강한 열의를 보여왔고 이에 따르는 막대한 홍보비용을 지출해 온 김진덕.정경식 재단의 김한일 대표가 이번 서명운동의 결과에 힘이 빠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각들도 있었다. 물론 3월달에 처음 서명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온라인 서명과 오프라인 서명지의 집계는 미미한 수준에서 진행됐다. 한달이 지나가도 1만명 정도나 겨우 채울 수 있겠구나 하는 초조감이 앞섰다. 하지만 김한일 대표와 한인단체장들이 위기감이 들어서인지 서명작업이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와함께 관망만하던 한인단체들이 속속 참여의사를 밝히며 서명운동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 지역 한인 언론매체들이 거의 매일 독도서명운동에 대한 광고와 기사로 지면을 채웠고,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한인교회나 한국마켓앞에 서명작업을 위한 가판대가 설치되기도 했다. 또한 발빠른 인사들은 한국이나 타 지역의 한인단체들에게 서명운동을 알리고 동참할 것을 호소하면서 서서히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충북 진천군의 진천여중 학생 500명이 서명작업을 마쳤다고 연락이 올 정도였다. 본 SFKorean.com 에 각 단체별 지역별 서명자 수를 누적집계한 것도 선의의 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된다. 이왕 하는거 단체이름도 홍보할 겸 적극적으로 온라인 서명과 서명지를 받으러 다녔다고 한 참여자는 전한다. 식당앞에서 주인 눈치를 보며 서명지를 받았다는 사람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싱가포르에서 어떻게 알고 온라인 서명을 한 사람도, 서툰 한글로 서명지를 채운 한국학교의 어린 학생도, 모두 독도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모이면 힘이 된다는 말의 의미를 이번 독도서명운동으로 우리는 깨달았다. 거대한 공룡기업이 되어버린 구글이 수 만명의 목소리가 담긴 이 서명지들을 모른채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얻은 것이 많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고 흩어져 살아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독도표기 복원을 위한 서명운동은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4-04 보수와 진보, 그 평행선에서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상에서 정치적인 문제가 나오면 등장하는 말이 '좌파 빨갱이'와 '수구 꼴통'이라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세력이 상대를 비하하는 말로, 정상적인 토론이 막히면 결국은 상대편을 이 두가지 말로 공격하면서 댓글놀이는 끝이난다. 얼마전에 발생했던 본국의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으로 본국사회가 시끄럽더니 이곳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이 지역을 방문 하면서 또다시 이념논쟁이 불거졌다. 간혹 한 이슈에 대한 이념의 대립이 심해지다 보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상대방을 무차별 공격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정신적, 심리적 내전(內戰) 상태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를 포함한 세계 어느나라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은 존재한다. 원래 프랑스 혁명 당시 의석의 배치에서 유래한 좌우의 개념은 급진성에 의한 구분이었다. 그렇기에 '진보 = 좌파 = 빨갱이' 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보수는 곧 우파요 수구세력이라고 단정짓는다. 여기에 가끔 극소수이긴 하지만 양 세력의 돌출행동도 이런 등식을 정당화 시킨다. 결코 타협할 줄 모르고 평행선을 가고 있는 극좌, 극우파의 행동이 국민들은 물론 해외의 한인동포들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기회주의에 민첩한 정치가들은 이를 당리당략에 악용하고,때로는 중도보수나 중도개혁파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외줄타기를 하기도 한다. 미국과 유럽에도 진보와 보수정당이 있지만, 서로 경쟁한다고 하여 나라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선진국의 진보와 보수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자국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공유하고, 헌법의 기본 가치와 원칙을 존중한다는 공동 목표에 대한 상호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내 진보와 보수도 서로가 자신이 애국자라고 주장한다면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옹호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등 헌법의 기본 원칙을 지켜가며 국가 이익과 국민복지를 최종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 북가주 한인사회도 구태의연한 본국의 정치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과격한 행동을 자제해야 할 때다. 오랫만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면서 쓸데없는 정치얘기로 편이 갈린다면 얼마나 한심하고 우스운가? 사회 초년생시절 회사의 사내교육 중 강사가 침을 튀면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고객과 절대 화제로 삼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정치와 종교얘기 라고..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5-03-31 저녁 한 끼에 삼십 만 달러
셰인 스미스, 요즘 잘 나가는 "Vice Media" 그룹의 공동창업자. 그가 지난 일월 라스 베가스에서 열린 "컨수머 전자제품 트레이드"쇼에서 하루 저녁 식사 값으로 삼십 만 달러를 썼다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원래 거칠 것 없는 돈 씀씀이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삼십 명 게스트의 식사비로 삼십 만 달러를 날렸으니,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가 90 년 대 중반에 시작한 '바이스 미디어'는 젊은 층 위주로 급 성장하고 있는 미디아 그룹으로 15 억 달러 규모의 자산평가를 받고있는데 폭스 그룹의 사주 루퍼트 머독의 7천 5 백만 달러를 포함 , HBO, Time Warner 등 메이져 미디어 그룹들이 투자를 하고 있는 중이다. 벨라지오 호텔의 프라임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열린 이 디너에는 각종 술이 넘쳐 흘렀는데 한 병에 이 만 달러 짜리 와인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메인 디쉬로는 28 온스 짜리 리바이 스테이크로 가격은 85 달러. 이 날 디너는 스미스가 혼자 다 개인 돈으로 지불했다고 하는데 전 날 블랙젝에서 딴 판돈 백 만달러 중에서 처리했다고 한다. 평소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낭비벽은 인정하지만, 그를 능력있는 비즈니스맨으로 인정하고 있다. 주류 언론과는 다른 시각으로 젊은 층 (18 세-34 세)을 파고 들어가 그 들의 취향을 분석, 뉴스자원을 확보한 후 막힘없이 심층보도를 한다면서 그를 두둔하고 있다. 메이져 미디어 그룹들이 고전하고 있는 와중에, 생긴 지 채 이십 년도 안되는 신생아가 15 억 달러의 그룹으로 성장했으니 그런 비즈니스 능력은 인정받을만 하다. 그런 화제 속에서 그가 최근에 취한 행동은 더 큰 시선을 끌고있다. 매요 클리닉 암 리서치 전문 병원 (클리블랜드 소재)에 큰 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암 관련 리서치를 돕기위해 백 만 달러의 기금조성 계획을 실행하고있다. 독지가 들이 50 만 달러의 펀드를 기증하면 자신이 나머지 50 만 달러의 매칭펀드를 제공해서 도합 백 만 달러의 기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자연히 암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되었고, 암의 원인 분석과 그 치료에 나름대로 돕겠다는 의지를 굳히게 되었다. 블랙잭을 했든 사업을 했던 간에 돈을 모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주위를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그 가족을 위해서 잘 된 일이지만,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다. 자신의 지갑을 털어 그 돈을 내놓았을 때야 비로서 그 돈에는 가치가 붙게된다.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그 돈을 풀었을 때 그 돈은 이웃을 위한 피와 살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암 연구에 내놓을 만큼 큰 돈은 절대 아니지만 어려운 그 누군가에게 따뜻한 저녁한끼를 대접할만한 적은 돈이라해도 그 쌈짓돈은 받는이의 몸 속에 따뜻한 피를 흐르게 할 수 있다.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3-04 충동 조절장애자
얼마 전 어이없는 사건 몇 개가 온 한국민들은 분노하게 했다. 어린이집 구타사건, 땅콩 회항, 결별한 애인에게 차량돌진 등 순간적인 화를 참지못해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절반 이상이 우발적인 범죄라고 하니 현대인들이 화를 잘 참지 못하는 것은 기정사실인가 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성질 한다'고 자랑삼아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자주 화를 내거나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면 이는 엄연히 '충동조절장애'라는 질환에 걸린 정신장애자다. 한국에서야 상대에게 단순폭행으로 상해를 입히는 정도지만, 총기 휴대가 합법화된 미국에서는 자칫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현대인들이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을 핵가족화에서 찾는다. 대가족일때는 분노가 가족들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되었지만 요즘은 통제받을 수도 통제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는 있지만 한인식당내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나무라는 부모들을 별로 보질 못했고, 폭력적인 게임에 빠진 자녀의 컴퓨터사용을 제지하기 힘들다는 하소연만 듣는다. 이 사회적 문제를 폭력이 미화된 영화나 드라마, 점점 잔인한 영상을 내보내는 미디어매체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시청율을 감안하여 자극적인 장면이나 살인자의 미소 등을 여과없이 뉴스로 방송하여 범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네트위크의 시대라는 현대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스피디한 정보전달이 생활화 되어있다. 사람들은 평균 6단계만 거치면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나 소셜네트위크의 거리는 3단계 정도라고 한다. 이는 휴대전화, SNS, 카카오톡, 이메일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거의 실시간대의 뉴스를 접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뉴스가 희망적이고 발전적이면 행복이 전파되는 것이고, 뉴스가 폭력, 사고 등의 악의 요소라면 불행이 전파되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지면을 통해 여러번 밝혔듯이 미주내 한인사회의 어둡고 비판적인 뉴스나 사고소식 보다는, 밝고 아름다운 기사나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만을 전달할 것을 독자들에게 다시한번 약속한다.상식이 통하는 사회, 폭력없는 사회, 양보의 미덕이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2-04 인터뷰와 국제시장
최근에 상영된 화제의 영화 2편이 한인사회에 계속 회자되고 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암살한다는내용을 문제삼아 북한측이 제작사에 대한 해킹까지 서슴치 않은 미국판 코메디영화 '인터뷰'와, 본국에서 천만관객을 동원하고 미주지역까지 개봉한 복고풍의 영화 '국제시장'이다. 미국식 코메디로 다소 황당한 설정이었지만 북한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공을 세운 영화 '인터뷰'는 극장개봉과 함께 온라인 유료다운로드로 관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북한측이 영화제작사인 소니픽쳐스에 대한 해킹이 사실화되며 미국정부는 북한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제재가 다시 논의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미국에서도 개봉되어 미주한인들을 울리고 웃긴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 근대화의 재발견이라는 평가와 함께 누적관객 천 만명을 훌쩍 넘기며 새로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북가주내 상영관에서도 연일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과 함께 나온 가족관객들이 만족한 모습으로 극장문을 나서는 광경이 이어졌다. 현대사회는 영화와 TV프로그램을 포함한 문화콘텐츠들이 국경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것은 할리웃영화의 힘이 일조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이라고 하면 6.25를 뜻하는 한국전쟁으로만 기억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류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드라마 '대장금'은 30억 명이 시청을 했고,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은 20억 명이 클릭을했다. 영화배우 배용준은 아시아에서 3조원의 경제효과를 올렸다는 통계도 나와있다. 문화강국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증거가 디지탈시대인 현대사회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탈북자단체들이 영화 '인터뷰'를 녹화한 DVD를 풍선에 실어 북한쪽으로 날려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 영화 한 편으로 동토의 왕국이 무너질 지는 미지수지만 총이나 대포 몇 발 쏘아대는 것 보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주지역의 한인들도 미국 영화관에서 자막없이 한국어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며 감동을 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변화된 세월을 사는 것인가. 이번에 '국제시장'을 같이 보았던 친구 부부가 10년 만에 극장을 찾았다는 얘기가 그들만의 경우는 아닌 것 같았다.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5-02-02 그 많은 돈 어떻게 썼나?
그린라이트 캐피털회사는 잘 알려진 헤지펀드 그룹이다. 동회사 창업자인 데이비드 아인혼, 그는 가끔 라스 베이거스로 간다. 도박을 즐기러 가는 것이다. 그는 몇 해 전에도 베이거스에 갔었다. 바로 월드 포커 대회에 참전한 것이다. 와이프에게서 이미 사전 승인도 받았다고 한다. 모두 합해서 48 명이 각기 참가비 백 만 달러씩 내고 참전했다. 아인혼은 중반까지 잘 나가다가 마지막 결선에서 두명의 프로 전문 꾼들에게 패배, 아깝게도 삼위로 밀려났다. 그래도 판돈으로 무려 사백 삼십 오만 달러나 벌어들였다. 백만 달러 투자했으니까 4 배나 번 셈이다 그렇게 도박에서 딴 자금은 다 어디에 썼을까?..... 이 포커대회에서는 상금을 제외한 총 오백 오십만 달러의 판돈이 거두어졌다. 여기에서 딴 돈은 각자의 호주머니로 가지않고 대부분이 캐나다 몬트리올 소재 One Drop , 식수제공 자선단체에 전해진다. 그러니까 이 판돈은 현재 지구상에서 난민들이 필요로 하는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원래 포커대회 자체가 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딴 돈도 전부 다 그 곳으로 갔다. 데이비드 아인혼, 그는 지난 1996 년 부모한테서 빌린 돈 45만 달러를 포함 총 90만 달러의 시드마니로 그린라이트 캐피탈 헤지 펀드를 설립해서 동 펀드를 자산 55 억 달러의 대규모 회사로 성장시켰다. 무려 6 천 배로 키운 것이다. 수 년전 미 탑 파이브에 속했던 투자은행 리만 브라더스에 도전 , 동 인베스트먼트 은행이 장부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맹 공격을 감행한 결과 그 회사가 망하는데 일조를 했다는 평도 받고 있다. 투자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칼같은 (?) 인물이다 사실상, 돈을 얼마나, 어떻게 많이 벌었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더 존경해야할 이유는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을 번 그 후의 행동이다.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누구를 위해서 사용했는지 그 점이 바로 핵심이다. 어떤 재벌 들 ,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천명했었다. 사심없이 순수한 뜻으로 했는지, 아니면 , 어려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했는지 사람들은 다 알고있다. 대부분 사유재단을 만들어 그 기금을 꽁꽁 묶어두었다. 우리 서민들 그 삶이 넉넉하지는 않다. 그렇다해도 적게 벌면 어떤가? 적게 벌면 적게 버는 대로 , 조금 씩 나누어 가지면 되지 않겠는가? 삶의 한가지 지혜는 "같이 나누어 가지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고생해서 모은 것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 사실 상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노력을 해야될 것 같다. 왜? 나눈 후에 오는 마음의 평화, 그 참 맛! 엔돌핀은 상대도 안될 맛이다. 늘 얻어먹고 다니는 사람들 , 자기 돈 굳었다고 좋아하니 베푸는 참 맛을 알 수가 없다.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는 사람, 따로 쳐다봐야할 이유가 없다. 단 간신히 삶을 꾸려가면서도 조용히 몇 푼 내놓는 작은 사람들에게는 진정 머리를 숙여야할 것 같다.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5-01-10 새해를 맞이하면서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을미년 새해가 저희에게 주어졌습니다. 늘 함께 해주시는 여러분 들께 감사드림니다. 때때로 부족한 정보,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여러분 들에게 누를 끼친 적도 많았을 것입니다. 먼저 제 잘못을 ,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들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작 년의 경제 전망은 약 3 퍼센트의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예상을 했었습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싯점에서 보면 실제 성장률은 3 퍼센트를 넘었을 뿐 아니라 어떤 분야 에서는 약 5 퍼센트까지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올 해 전망은 3 퍼센트에서 5 퍼센트 수준입니다. 긍정적인 평가와 기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작 년 과 올 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해보면, 작년까지의 경제 성장과 그 혜택은 탑 원 퍼센트를 비롯한 부유층에게 약 90 퍼센트가 돌아갔다고 보고있는 반면에, 올 해는 그러한 성장의 혜택이 일반 서민들과 중산층에게도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일반 서민들의 수입이 늘어나게 되어 소위 구매력이 활기를 띌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현재 5.8 퍼센트의 실업률, 비즈니스 투자의 확대로 인한 중 상위권 봉급자들의 고용증대, 개스가격의 하락등으로 서민들의 경제 사정이 호전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미 2 천 년대 부터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더 빠른 속도로 불어갈 것입니다. 이 변화의 바람에 대해 저희들은 어느정도 준비를 해야될 것입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거주하시는 우리 한인 들은 다 빠른 속도로 변화의 흐름이 있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팔로 알토, 로스 알토스 쿠퍼티노를 포함한 산타 클라라 카운티 지역, 이스트 베이 일부 지역들, 마린 카운티,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의 부동산 가격은 미 전체 평균 약 10 퍼센트의 서 너 배 이상 즉 30 퍼센트를 능가하는 가격인상을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가격의 상승이 지속되리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주변을 보시면. 중국계, 인도계, 러시아인들 그 들의 늘어난 숫자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부동산 투자도 중요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부채를 줄여서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부동산 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학교에서도 이들로 인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됩니다. 자녀들의 우수한 학교성적,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교육 대책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많은 돈을 들여 시키는 과외도 중요하지만, 먼저 좋은 양서를 읽는 기회를 꼭 가질수 있어야합니다. 일세 부모들이 이 점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주변의 우수 대학생들을 통해 양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른 무엇 보다 좋은 책 읽기를 부모님과 자녀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책 속에 있는 영어 단어, 어휘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삶에 대한 "고난과 아픔을"을 이해하게되면 그 삶의 폭이 넓고 깊어지게 됩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 스스로 왜 공부를 해야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더 이상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스스로 알게되니까요. 올 해는 책 읽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이길 수 있는 정신적 힘을 키울수 있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왜? 정신적 힘이 돈을 지배할 수 있을 때야 비로서 돈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새해는 내적으로 더 충실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성보 (미디어협회)
2015-01-04 팩트와 임팩트
요즘 한국의 인기있는 드라마 중에 방송국 기자들의 얘기를 다룬 드라마가 2편이나 된다. 특종을 잡기위해 온 몸을 던져가며 현장을 누비는 일선기자들의 생활상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모양이다. 박성보 편집국장 샌프란시스코 저널 얼마 전 이철수라는 이 지역에서 살던 1.5세 교포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는 일찍이 1960년대에 홀어머니와 함께 이민 온 결손가정의 자녀였다. 이민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청소년기를 방황하던 중,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중국 갱단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이씨의 사건을 접한 당시 새크라멘토 유니언지의 이경원 기자는 그의 사건을 시리즈기사로 쓰기 시작했고, 한인사회는 물론 범 아시안 커뮤니티의 구명으로 이어졌다. 당시 유재건 변호사를 비롯한 한인인사들과 일본계 인권변호사들이 이씨의 구명운동을 주도했고, 북가주 한인사회는 모금운동까지 벌여가며 억울하고 불쌍한 한 한인청년을 구해내는데 힘을 보탰다. 결국 그는 무죄평결을 받고 10년 만에 자유의 몸으로 석방됐었다. 하지만 너무나 억울한 옥살이로 인해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그에게 이민생활은 힘들기만 했다. 전신화상까지 당해 건강이 악화된 그는 최근까지 웰페어를 의지해 근근히 살아가다가 쓸쓸한 삶을 마감했다. 주위의 한인 청소년들이 명문대에 들어가서 우수한 장학생이 되고 주류사회에 뛰어들어 발군의 활약을 하는 등 모범적으로 성장하는 자녀들도 있지만, 이민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대형사고를 치는 경우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의 조승희가 그랬고 가까이 오클랜드 오이코스대 총격사고의 고수남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민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정체성의 부재와 소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한 우리의 자녀들이 불쌍하고 괴물같은 존재로 크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갖가지 사건과 사고를 접하는 기자들은 사실확인이 우선시 된다.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하지만 가해자나 목격자의 진술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글쓰는 사람은 누구나 다 기자행세를 하는 요즘의 온라인 상에서 임팩트만을 노리는 충격적이고 편중된 기사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특종은 임팩트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팩트에 근거했을 때 기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례식에서 만난 한 교포청년을 구해낸 노(老)기자를 보며 기레기로 하락한 기자들의 위상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원창 (비즈니스, 빌딩 융자 전문)
2014-12-15 위기에서 벗어나다
어린나이에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이. 그런 처녀 아이가 골프길에 나섰습니다. 올 해에 프로로 전향했으니 이제 막 일년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골프선수 목적으로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서 골프채를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올 한해의 프로 전적을 보면 드라브이샷 정확도가 전체에서 19 등, 드라이브 거리는 66번 째, 퍼팅에서도 28등, 그린위에서의 플레이는 7번 째. 이렇다고 내세울게 별로 없습니다. 옷 입는 것도 그렇고. 몇 주 전 시즌 마지막 투어 챔피언쉽에서 그 녀는 파 파이브 홀 두 번째 샷에서 이글 보다는 버디를 목표로, 전력을 다한 한 번의 롱 샷 보다는 두 번의 이지 샷으로 안전하게 접근해 갔습니다. 물망에 올랐던 박인비와 스테이시 루이스는 무리수로 밀려났습니다. 큰 기대를 걸지않았던 그 녀가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두어 투어 챔피언 상금 오십만 달러에 CME 통산 전적 최우수 스코어로 거금 백만 달러의 상금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번의 승리로 통산 5 번의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아마추어로 2 번 그리고 프로로서 3 번 우승했습니다. "상금으로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먼저 엄마에게 좋은 가방을 선사하겠다"고 답하면서 "엄마가 그 것을 받아 마땅하다"면서 살짝 웃었습니다. 캐디를 7 번이나 갈아치웠다고 비난(?)도 받았지만, 마지막 날 승리의 순간, 그 녀는 자기를 위해 휠드를 누볐던 7 명 캐디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자신의 그런 잘못을 사과도 했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캐디를 고르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리디아 고, 이제 열 일곱 살! 휠드에 서면 무서울 것이 없고 오히려 어른 들이 더 걱정해야 할 상대로 성장했습니다. 최종 결선 날 마지막 18 번 홀, 왼쪽에는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고 오른 쪽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국가대표였던 우수한 체격의 선수, 위험부담을 알면서도 핀 바로 옆에 공을 붙이려다 공이 그만 갈대밭으로 흘러들어가 이븐파도 못하고 보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리디아는 우선 그린에 올려놓고 보자는 안전위주로 부담없는 어프로치샷을 날려 최소한 파 플레이를 하게 되었습나다. 리디아의 작전도 좋았지만 스페인 선수, 지나친 욕심으로 승리를 바로 눈 앞에서 놓쳤습니다. 리디아는 그런식으로 무너진 적이 없습니다. 40 번 출전에서 단 한번도 컷을 놓친적이 없습니다. 바로 그 점이 다른 선수들과 다른 점입니다. 유명 선수들도 가끔 컷을 못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실수할 때가 있는거지요, 본인 들의 욕심 때문에. 리디아는 그런 실수가 없습니다. 골프칠 때는 " 마음을 비워야한다"고 얘기들 합니다. 비워야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비단 골프 뿐이겠습니까?... 우리 속에는 늘 생각이 많습니다. 집중이 안됩니다. 그 녀 속에는 딱 한가지 집중 , 골프 샷 그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비우는 마음을 우리가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ㅎㅎ